건축학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정잉쯔 2019. 9. 10. 12:20

비운의 신전

고대 그리스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혔던 아르테미스 신전이 어떻게 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아르테미스 신전은 단 한 차례만 건설되었던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서서히 규모를 키워나가다 마침내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될 만큼 뛰어난 하나의 건축물로 완성되었다.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드렸던 최초의 신전은 B.C. 700년경에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그리스인들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지만 재건되었다. 하지만 이 신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파괴되었다.

B.C. 560년, 당시 세계 제일의 부호였던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메타게네스라는 건축가를 불러 아르테미스 신전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전 규모는 다시 만들어질 때마다 커졌는데, 크로이소스 왕의 명령으로 지었던 이 세 번째 신전은 정면 16.43m, 입구에서 뒤쪽까지의 길이 23.2m 규모로 대단히 컸다고 한다.

크로이소스 왕의 재위 기간은 B.C. 560년부터 B.C. 564년까지로, 당시 왕이 직접 아르테미스 신전에 황금으로 만든 소의 상(像)과 원주를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아르테미스 신전도 이 무렵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 신전도 바로 이때 만들어진 신전이다.

그러나 이 신전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B.C. 356년 10월, 헤로스트라토스라는 한 미치광이 남자의 의도적인 방화로 신전은 불에 타 내려앉고 말았다. 그가 불을 지른 동기는 "후세까지 이야기될 만큼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자기 현시욕이었다. 그래서 사건의 범인을 잡은 뒤 아이오니아의 여러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는 "앞으로 범인의 이름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는 지시를 사람들에게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의 이름은 후세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아르테미스 여신이 방화를 막지 못했던 이유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탄생에 입회하기 위해 신전을 잠시 비웠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남아 있다.

신전이 불에 타자 에페소스 시민들은 모두 신전 재건에 착수했다. 여성들은 빠짐없이 장신구와 보석을 팔아서 신전 재건 자금으로 기부했다. 또 이오니아 지방 각 도시의 왕들은 신전 건축에 사용할 대리석 기둥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당시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신앙은 뜨거웠다고 한다.

 

번영을 누렸던 교역 도시 에페소스

이번에는 아르테미스 신전, 즉 아르 주제 세움이 위치했던 에페소스로 눈을 돌려보자.

에페소스 유적은 터키 이즈미르 시에서 남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셀주크라는 도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르테미스 신전 외에도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과 대원 형 경기장, 도서관 등이 발굴되었다.

에페소스는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이 B.C. 11세기경에 세운 식민도시였다. 그 후 B.C. 8세기~B.C. 7세기에는 서아시아의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로서 커다란 번영을 누렸다.

에페소스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항구를 끼고 있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큰 요인은 그리스와 페니키아 사이의 활발한 교역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문제는 있었다. 에페소스는 카이스테르 강 하류에 있었기 때문에 강 상류에서 토사가 밀려와 쌓이게 되어 항구 기능이 마비되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따라서 그때마다 도시 기능의 일부가 마비되는 곤란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B.C. 6세기부터 차례로 리디아 왕국2), 페르시아 제국3),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도시는 멸망하지 않고 계속 성장해나갔다.

B.C. 6세기부터 B.C. 3세기까지 에페소스의 최전성기에는 무려 20만의 인구가 거주했다고 당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도시 전체는 13㎞에 이르는 성벽이 둘러싸여 있었으며, 대부분 건물을 대리석으로 지을 만큼 커다란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건설된 B.C. 3세기경에는 그 번영이 절정에 달했다. 아르테미스 신전을 참배하기 위해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몰려들었으며, 그 덕분에 에페소스는 더욱더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특이한 모습의 풍요의 여신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여길 정도로 아름다운 신전을 지어 숭배했던 아르테미스 여신은 도대체 어떤 신이었을까?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라고 불리는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숲과 언덕, 야생 동물을 수호하고, 수렵을 관장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또 처녀와 순결을 상징하는 신이었으며, 달빛의 여신이기도 했다.

현재 에페소스의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아르테미스 상을 본 사람들은 기존에 갖고 있던 아르테미스의 처녀신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신전 유적에서 발견된 여신상은 양어깨에서 배꼽 부근까지 유방이 잔뜩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상당히 색다른 느낌을 준다. 또 여신상 하반신 쪽으로는 크고 작은 야수들의 상이 장식되어 있어 어딘지 모르게 원시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여신상의 모습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스의 이미지보다 오리엔트 세계관에 바탕을 둔 토착적인 대지모신(大地母神)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가슴 쪽에 솟아 있는 많은 유방은 풍요를 상징하며, 그 밑쪽에 장식된 야수들의 상은 수렵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그리스 문화 속에서 생성된 여신이 새로운 문화를 만나면서 토착적인 이미지를 더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중해 세계를 매료시킨 아르테미스 여신 신앙은 1세기 무렵까지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건너온 사도 바울로1)가 신의 이름으로 우상 숭배를 금하자 에페소스인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르테미스에 대한 신앙이 뜨거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숭배는 유럽 세계를 제패한 기독교의 힘에 밀려 결국 소멸하고 말았다.

지중해 세계를 끌어당긴 아름다운 신전

에게 해 연안에 셀주크라는 터키의 도시가 있다. 과거 이 도시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그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일부 대리석과 기둥의 잔해만이 남아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어떻게 해서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힐 수 있었을까?

아르테미스 신전을 직접 본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들은 아름답게 장식된 신전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한 비잔티움의 철학자 필론은 아르테미스 신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해놓았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신들을 위한 오직 하나의 집이다. 사람 눈으로 보면, 이곳이 지상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불사(不死)의 신들의 천상 세계가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필론의 표현처럼, 아르테미스 신전은 건축물로서 빼어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힐 수 있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the temple of Artemis at Ephesos] (고대유적, 2007. 6. 4., 모니노 다쿠미, 마쓰시로 모리히로, 이민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