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루브르 박물관의 회화 소장품은 13세기부터 1848년까지의 작품들로 약 6,000점 이상이며 소장품의 전시를 총괄하는 12명에 이르는 큐레이터에 의해 관리된다. 이중 약 2/3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고 약 1,200점 이상이 북유럽 작품이다. 이탈리아 회화는 대부분 프랑수아 1세와 루이 14세의 유품으로 남겨진 소장품들로 구성되었고 몇몇은 나폴레옹시대의 전리품으로 들여왔다가 그대로 남은 것들이며 몇몇은 사들인 것들이다. 소장품의 수집은 프응아닝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그는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탈리아의 거장들로부터 작품을 들여왔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의 궁정으로 데려오기도 하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왕실의 수집품은 루브르의 핵심을 이루었다. 1986년 오르세(d'Orsay) 기차역이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개장되자 루브르의 소장품을 1848년 혁명이전과 이후의 작품으로 나누어 1848년 이후에 완성된 작품들을 새로운 미술관으로 옮겼다. 프랑스와 북유럽 작품들은 리슐리외 관(Richelieu Wing)과 Cour Carree에 전시되어 있고 스페인, 이탈리아 작품들은 드농 관(Denon Wing)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 미술품들 중에는 앙게랑 콰르통의 아비뇽 피에타, 장 푸셰의 King Jean le Bon 후고전시대 이래 남아있는 서유럽 작품중 가장 오래된 독립 초상화인 하시엔디 리고의 루이 14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외젠 들라크루아의 자유는 민중을 바리케이드로 이끈다 등이 있다. 북유럽 작품들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레이스 짜는 여인과 천문학자, 캐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Trees of Crows, 렘브란트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욕실의 바세바 그리고 도살되는 소 등을 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작품들의 수집은 주목할만 한데 르네상스 시대의 소장품들이 특히 훌륭하다. 작품들 중에는 리얼리즘과 세밀함(위대한 영적 세상의 중요한 사건을 세밀히 묘사한다는 의미로)이 투영된 안드레아 만테냐와 조반니 벨리니의 기병대가 있다. 르네상스의 이름 높은 소장품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성 안나, 성 요한과 성모 그리고 아기예수, 그리고 바위위의 마돈나가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으로 점성술사와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루브르는 16세기 베니스의 화가 티션(티티안, 티치아노 베첼리)의 전원의 합주, 그리스도의 매, 가시 면류관을 전시하고 있다. 라 카스 컬렉션은 1869년 루이 라 카스가 루브르 박물관에 유품으로 남긴 것으로 루브르 역사상 최대규모의 개인 기증이다. 라 카스는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584점의 회화를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중에는 앙투안 와토의 Commedia dell'Arte player of Pierrot가 있다. 이 기증품들을 주제로 2007년 1869:Watteau, Chardin...entrent au Louvre. La Collection La Caze 전시회가 열렸다.
이집트 유물
이 전시관은 50,000이어서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BC 4000년부터 AD 4세기까지의 나일 강 문명의 산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 세계 최대규모의 이집트 컬렉션은 이집트의 고대 왕조로부터 중왕조 시대 그리고 신왕조 시대와 로마, 프톨레마이오스, 비잔틴 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이집트인들의 삶을 관통하여 보여준다. 이 전시관은 본래 국왕 소유의 컬렉션들로 시작하여 1798년 나폴레옹이 원정길에 도미니크 비방 드농(후에 루브르 박물관장이 됨)를 동행시키면서 규모가 커졌다.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 로제타석을 번역하자 샤를 10세는 이집트 고대유물관을 조성하도록 명령하였다. 샹폴리옹은 세 가지 컬렉션을 사들이도록 조언하였는데, the Durand, Salt 그리고 Drovetti였다. 카이로에 이집트 박물관을 세운 오귀스트 마리에트 덕에 전시관의 규모가 더 커졌는데, 마리에 트는 멤피스를 발굴하고 나서 앉아있는 서기를 포함한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품들을 상자에 넣어 루브르로 보내왔다. 이 전시관 입구는 BC 2000년경 제작된 커다란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으며 전시관 내부에 20여 개의 방에 전시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소장품의 종류는 미술품, 파피루스 두루마리, 미라, 도구들, 옷가지, 보석, 게임, 악기 그리고 무기 등이다.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대영박물관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 궁전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세느 강변에 포함하여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프랑스어로 뮈제 뒤 루브르, 그랑 루브르, 또는 단순히 루브르 라고도 불린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 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아직도 당시의 요새 잔재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가 루브르 궁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건물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루브르에 100년동안 남아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박물관이 1796년에서 1801년까지 문을 닫았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에 빼앗겨 루브르로 보내졌던 많은 작품들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사실 당시 박물관장이 지하실에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도 여럿 된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제국(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 중에 20,000여 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공화국 때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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