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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기자의 피라미드에 관한 정보

피라미드(출처:픽사베이)

1. 아메리카 대륙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달리 신전의 기단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말한다. 그러나 예외로 멕시코의 팔렌케에 있는 <비문의 신전>처럼 내부에서 묘가 발견된 것도 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몇 개의 기단이 겹겹으로 된 계단식의 모양인 것이 많고, 정상은 평평하며 신전이 거기 세워지며 적어도 한쪽에는 계단이 나 있다. 최고(古)의 것으로는 라벤나의 봉토(封土) 원뿔꼴의 피라미드가 있으나, 후에는 바깥쪽을 돌로 덮은 방형(方形) 혹은 구형(矩形)의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중앙 안데스 지대에서는 B.C. 2천 년대에서부터 페루 해안지방에 나타나며 コ형의 것이 많고 아도베(일 건 벽돌,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벽면에 채색회화를 그려놓은 예가 있다. 모치가, 치무 문화기에는 아도베에 의한 거대한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라미드 [pyramid, pyramid] (미술대사전(용어 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2. 로마 제국에서 묘 또는 장제(葬祭) 건축으로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모방한 유구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로마에 있는 B.C. 1세기 후반의 고관 케스티우스(Cestius)의 묘로, 사방 22m 사방의 저 면의 높이 27m의 사각 추가 콘크리트로 만들어지고 표면은 대리석으로 덮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라미드 [pyramid, pyramid] (미술대사전(용어 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3.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사각 추형의 구축물을 말한다. 고왕국 시대에서 신왕국 시대에 걸쳐서(B.C. 2826년경~B.C. 1085년경) 건조되었고, 주로 왕묘로 채용됐다. 피라미드의 본체(本體)는 각 면이 동서남북으로 향한 각추형(角錐形)의 돌이나 일 건 벽돌 즉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묘실은 거의 중앙에 있으나 그 높이는 지하, 저면(底面)의 위, 본체 내부 등 각각 다르다. 묘실 입구는 북쪽 면의 어느 정도의 높이에 혹은 북쪽 지표면에 있다. 매장 후 통로는 돌로 채워지거나 돌문으로 엄중히 봉쇄되어 입구까지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형식은, 제3왕조 제세를 왕(B.C. 2660년경)의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 제3왕조 말이나 제4왕조 초 스네프루(B.C. 2650년경)의 다흐슈르의 피라미드 2기(굴절 피라미드 및 북 피라미드) 등을 거쳐, 제4 왕조시대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완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쿠푸 왕(B.C. 2580년경)의 제1 피라미드는 저변이 사방 230.4m, 애초의 높이 약 146.6m(현재의 높이 137.8m)라는 최대의 규모에 달하며 극히 정확한 시공으로 알려졌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벽을 두르고 그 동쪽 면에 장제전(葬祭殿)이 접해 있으며 또 거기에서 내일의 골짜기를 바라보는 유역전(流域殿)까지는 수백 미터의 참배를 위해서 만든 길이 있다. 그의 원형은 기자의 연결기 왕(B.C. 2560년경) 제2 피라미드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피라미드 복합체(콤플렉스)의 주위에는 왕족이나 귀족의 마스타바가 정연히 늘어서 있다. 제5~7왕조의 피라미드는 평균적으로 저변의 길이가 80m 정도로 축소되고, 장제전(葬祭殿)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제12왕조(B.C. 1991년경~B.C. 1786년경) 때에는 평균적 저변의 길이가 약 100m로 벽돌 혹은 절석조(切石造)의 뼈대 사이에 깬돌을 채워 넣어 건조되었다. 그러나 묘실에 이르는 회랑(回廊)은 복잡해지고 이것을 폐쇄하는 방법 역시 대단히 교묘해졌다. 왕묘로서의 피라미드는 제17왕조(B.C. 1650년경~B.C. 1567년경)까지 만들어졌다. 신왕국 시대에는 사인묘(私人墓)에 소규모의 피라미드가 부설된 예가 있다(디를 엘 마디나). 그 후에도 나프타 및 메로에 왕족이 많은 석조 피라미드를 세웠으나 규모는 작다(쿠르루, 누리)
[네이버 지식백과] 피라미드 [pyramid, pyramid] (미술대사전(용어 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4. 피라미드는 4각형의 토대에 측면은 3각형을 이루며, 각 측면이 한 정점에서 만나 방추형을 이루도록, 돌이나 벽돌 등을 쌓아 만든 구조물로서, 주로 기념비적 성격을 지닌다. 때에 따라 측면이 사다리꼴을 이루어 꼭대기가 평평한 것도 있으며, 측면이 계단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건조되었는데, 주로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메소포타미아, 동아시아, 멕시코, 남아메리카, 지중해 연안 지역 등 고대 문명권에서 발굴되었으며, 현재 발굴 중이거나 구조물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만 발굴된 곳도 있다. 이 중 이집트, 멕시코, 남아메리카의 피라미드가 가장 잘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국왕, 왕비, 왕족 무덤의 한 형식으로서, 그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 미스(pyramid)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를 ‘메이르(EMR)’라고 불렀으며, 아랍어로는 ‘아호람(Abram)’ 복수는 ‘아흐라마트(Ahramat)’이다. 이집트 피라미드로는 현재 80기(基)가 알려졌으며, 이 중 대부분이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 슛(Abu Rawash)에서 엘-가훈(el-Lahun)에 이르는 남북 약 90km인 나일 강 서안 사막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있다. 그러나 많은 수가 붕괴하여 벽돌 혹은 돌로 이루어진 산의 형태만 갖추고 있거나, 심지어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뜻밖에 적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기자(Giza)의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파라오의 피라미드로 가장 규모가 크다.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5세기)의 《역사》 권2에 있다. 그는 이집트 기자(Giza)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중세의 기록도 다소 남아 있다. 근세에 이르러 천문대설 ·창고 설 등 공상적 ·신비적인 해석도 가해졌으나, 학술적으로는 나폴레옹 원정 때 조사단에 의한 《이집트지(誌)》가 돋보인다. 19세기 말 이래 피트라, 보르하르트, 라이스나 등의 조사로 과학적 해명이 이루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라미드 [pyramid]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