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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올림피아 제우스 상에 관한 정보

성역 최대의 신전

해를 거듭하면서 그 규모가 확대된 올림피아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건축물은 제우스 신전이었다. 제우스 신전은 B.C. 456년경에 완성되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제우스 신전이 만들어진 계기는 도시국가 사이의 전쟁 때문이었다. 당시 올림피아는 도시국가 엘리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엘리스 인들은 인근 도시국가 피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올림피아 성역에 제우스 신전을 지었다.

엘리스의 건축가 리본이 설계한 이 신전의 건설은 B.C. 470년에 시작되어 10년 후인 B.C. 460년에 완성되었다.

제우스 신전은 성역 중심부에 건설되었다. 건물 앞뒤로 각 6개, 좌우 13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세로 27m, 가로 64m에 이르는 장방형의 이 건축물은 B.C. 5세기 무렵 그리스 세계에서는 가장 크고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the statue of Zeus at Olympia] (고대유적, 2007. 6. 4., 모니노 다쿠미, 마쓰시로 모리히로, 이민옥)

제우스 상의 신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는 타이타늄족(거인족)의 왕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다. 제우스는 형제들인 하데스와 포세이돈의 도움을 받아 타이타늄족에 반란을 일으켜 크로노스를 권좌에서 몰아낸 다음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형제들과 나누어 가졌다. 그러고는 올림포스 산에 거처를 정하고 헤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바람기가 많았던 제우스는 많은 여신과 관계를 맺어 아테나, 아르테미스, 아폴론, 아레스, 디오니소스, 헤라클레스 같은 신과 영웅들을 자식으로 두었다.

제우스의 이름은 빛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하늘과 천둥의 신이며, 질서와 정의, 법률을 지배하는 최고신이다. 그는 흔히 손에 왕홀(王笏)과 번개를 가지고 독수리를 따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파르테논('파르테논 신전'편 참조)의 아테나 상을 제작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제우스 상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볼 만큼 멋지게 만들기 위해 치밀한 계산을 했다.

제우스 상은 높이 90㎝, 폭 6.6m의 대리석 받침대 위에 제우스 신이 왕좌에 걸터앉아 있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제우스 상의 크기는 받침대를 포함하면 약 12m 정도로 거의 천장이 닿을 정도였다. 머리에는 황금으로 만든 올리브 가지를 두른 왕관을 썼으며, 발에는 황금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또 오른손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 상을, 왼손에는 독수리가 앉아 있는 쇠 지팡이를 갖고 왕좌에 앉아 있었다. 신상의 본체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살아가 사용되었고, 맹수와 흰 독수리가 그려진 의복에는 황금이 붙어 있었으며, 각종 보석과 흑단(黑檀 : 감나무과의 늘푸른나무로 흔히 '오목'이라고도 하며, 주로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옮긴 이), 수정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우스 상의 표면 균열을 막기 위해 올림퍼스의 신관들은 계속 올리브 기름을 발라주었다고 한다.

페이디아스는 제우스 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신전의 조명에도 남다른 신경을 썼다. 신전에는 채광창이나 횃불 같은 조명 도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신전 안을 밝혔다고 한다.

또 신전 앞에 연못을 파서 바닥과 주위에 검은 대리석을 깔았으며, 연못 안에는 올리브 기름을 채워 넣었다. 그러면 유일한 채광창인 입구를 통해 들어온 빛이 연못 표면의 올리브 기름에 반사되어 제우스 상을 비추었다. 이런 모습의 제우스 상은 어두운 실내에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보는 이를 압도했다고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정한 필론은 제우스 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람들은 다른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에는 단지 눈을 크게 뜰 뿐이지만, 제우스 상 앞에서는 두려워 떨며 무릎을 꿇는다. 제우스 상은 너무나 성스러워서 도무지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태어난 땅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였던 제우스 상은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장소로 유명한 올림피아에 존재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고대 그리스의 주신인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렸던 제우스 신전과 그 신전이 존재했던 올림피아 성역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전설에 따르면, 올림픽의 기원은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가 아버지를 칭송하기 위한 잔치로 시작했다는 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엘리스 지방의 폴리스인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가 딸 히포다메이아의 결혼 상대인 펠롭스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벌인 전차 경기가 그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역사학적으로 볼 때 고대 올림픽은 지금과 같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당시 올림픽은 신들에게 인간들의 능력을 선보이는 경연장이었으며, 경기 그 자체가 신들에게 바치는 공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올림피아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인 제우스 신앙이 아주 번성했던 지역이며,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단의 알피오스 강과 클라 디오스 강이 만나는 지점 부근으로 이오니아 해에서 내륙으로 16㎞ 떨어진 교통의 요지에 있었다. 이 지역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 올림픽을 치르는 과정에서 많은 건축물이 들어섰다.

올림피아라는 이름은 정확한 지명이 아니며, 알티스('신성한 제우스의 숲'이라는 뜻이다-옮긴 이)라는 지역에 있는 성역을 지칭한다.

기원이 다소 불분명하긴 하지만, 원래 올림픽은 제우스 신을 칭송하기 위한 행사로 B.C. 776년부터 393년까지 4년마다 개최되었다. 경기 시작 전후 1개월간은 '신성한 휴전' 기간으로, 이때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다. 또 설사 전쟁 중이라고 해도 휴전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올림픽은 애초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또한, 만약 이 규칙을 어기면 처벌을 받았다.

B.C. 146년, 올림피아 성역은 로마 식민지가 되었지만 파괴되지 않았고 올림픽 경기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영향으로 그리스 전역과 로마, 마케도니아에서 온 사람들까지도 참가하는 국제적인 행사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시대까지 계속되었던 올림픽 경기는 393년 제291회 경기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79~395년 재위)가 내린 이교금지령으로 올림픽은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라는 이교의 신을 숭상하는 잔치를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