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학

바빌론의 공중정원에 관한 정보

바빌론의 공중정원 유적

1) 바빌론의 공중정원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그 위치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곳이다. 그 어떤 바빌로니아
기록에서도 정원에 대한 기록이 없고, 현재 바빌론에서도 관련 유적이 발견된 적이 없다. 이와 관련된 주장은 총 3가지가
존재하는데, 첫째로는 그리스의 역사가들이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완전히 신화적인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이고,
두 번째로는 실제로 바빌론에 공중정원이 존재했으나, 다만 기원후 1세기 즈음 완전히 파괴되었으리라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공중정원이 바빌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 있었던 공중정원에 있던 것이
잘못 번역되어 전해진 것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한 전설에 따르면,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인류의 영광'이라 불리는 궁전 바로 옆에 세워졌다. 이는 당시 왕비였던

'아미티스'가 고향의 울창한 녹음과 수목들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그녀를 위해 지었다고 알려졌고,
이런 설화는 바빌로니아 신관 베로수스에 의해 기록되어 후에 유대인 요세푸스에 의해 인용되었다. 이와 같은
전설은 기원전 9세기 바빌론을 다스렸던 전설적인 여왕 세미라 미스의 정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였고,
'세미라 미스의 공중 정원'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고대 바빌론에 있던 거대한 정원이다. 각종 나무, 관목, 덩굴
식물들이 층층이 심겨 있던 계단식 정원으로, 그 장대한 크기로 인하여 진흙 벽돌로 이루어진 초록빛 산과 같이 보였다고
기록에는 전해지고 있다. 현대 이라크의 밥일 지방 안에 있었으며, 지금은 그 존재가 남아있지 않다. 많은 사람이
'공중정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그리스인들이 기록을 남길 때 사용한 단어 'kremastos'가
'공중'이라는 의미 외에도, 테라스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고대의 기록

 

고대 바빌론의 공중정원에 대하여 현존하는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모두 5명이 존재하며, 이들 모두 각자의 기록에서
바빌론의 공중정원의 규모, 관개시설, 형태, 지어진 이유 등에 대하여 차이를 보인다. 

요세푸스 (37 - 100 AD)
요세푸스는 당시 바빌로니아의 신관이었던 '베로수스'의 설명을 인용하여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이 현재 남아있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다. 베로수스는 당시 공중정원이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하여 건설되었다고 썼다.
"그는 이 궁전에 거대한 기둥들이 받치는 높은 길을 닦고, 온갖 나무와 식물들을 심은 후 이를 '공중의 낙원'이라 칭했다.
그는 궁전의 배치를 산악지방과 정확히 같은 형태로 조성하였는데, 이는 산악 지방인 메디아에서 태어나 자란 왕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디오도로스 시쿨루스 (60 - 30 BC)
이 역사학자는 기원전 4세기경에 쓰인 두 문헌을 종합하여 기록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디오도로스는 시리아 왕의 건설을 언급한다.
공중정원은 모든 변이 완벽하게 같은 정사각형의 밑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각각의 면이 약 400걸음 정도 되었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각각의 층들의 깊이는 가장 거대한 나무들에 충분히 영양을 공급할 만큼 깊었으며, 공중정원은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그 물을 끌어왔다.


퀸티스 루푸스 (기원후 1세기)
루푸스 또한 디오도로스와 같은 문헌을 근거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정원이 성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고 적었으며,
왕비가 그녀의 고향을 그리워했기 때문에 왕이 왕비를 위해 이 공중정원을 지었다고 적었다. 

스트라본 ( 64 BC - 21 AD )
이 사람의 기록은 아마 현재는 소실된 기원전 4세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쓰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공중정원이 '아르키메데스의 회전장치'를 이용하여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물을 끌어올렸다고 적었다 

필로 (기원후 4~5세기)
필로 또한 이 장대한 공중정원을 소개하며, 정원이 스트라본이 소개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물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하였고, 거대한 질량을 가진 흙들을 높이까지 쌓아올리고, 물을 끌어올린 후 벽을 쌓은 기술과 독창성을 매우 크게 평가하였다. 

 

3) 사실성

 

사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그저 시 속에서만 존재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던 건축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는 당대의 바빌로니아 기록들이 현재까지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로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왕비 '아미티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상당히 많은 기록이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업적을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그 기록 속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당대의 바빌론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는 정원의 존재를 들을 수 있었으며, 후대의 작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시 공중정원이 그리스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는 없다.
현재까지, 바빌론의 유적에서 공중정원의 잔해가 발굴되지는 않았다. 물론 공중정원의 잔해가 유프라테스 강 아래에 묻혀있을 수도 있으나, 

아직은 보고된 적이 없다. 

유프라테스 강은 고대에는 현재보다 더 동쪽에서 흘러갔으며, 아직 고고학계는 고대 바빌론의 서부지역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 한 학자는 베로수스가 공중정원을 다른 나라의 신화를 베껴와 순전히 정치적 이유로 이를 언급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