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기사단이 파괴한 영묘
현재 영묘가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중심부의 기초 부분과 몇 개의 기둥만이 쓰러져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 영화를 자랑했던 영묘가 왜 이 같은 폐허로 변해버렸을까?
영묘는 다른 많은 유적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18세기 초반 십자군 기사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되었다.
15~16세기의 유럽 사회는 신·구교의 갈등으로 인한 교회 내부의 분열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2)과의 전쟁 등으로 대단히 혼란스러운 격동기를 맞고 있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유럽 전체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십자군 기사단은 중요 거점을 사수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사단은 요새와 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지의 유적을 무차별적으로 해체해서 건축용 자재로 사용했다. 여기에는 마우솔로스의 영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기사단이 유적까지 자재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자 술탄 메메트 2세의 맏아들인 바예지드는 1481년 선왕이 죽자 동생 캠과 왕좌를 놓고 다투었다. 바예지드는 콘스탄티노플의 궁정 관리들로 구성된 강력한 파벌의 지지로 술탄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암살 위협을 느낀 캠은 당시 기독교의 거점으로 성 요한네스(요한) 기사단 3)이 주둔하고 있던 로도스 섬으로 망명해버렸다. 최초 망명 당시에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오래지 않아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운 십자군 파견을 계획했던 교황이 캠의 정체를 의심한 나머지 그를 인질로 잡아 로마로 연행해갔다. 이렇게 되자 서구 제국과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하여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투르크메니스탄군은 최신식 무기인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성벽들로 이들의 전진을 막기는 불가능했다. 사실 이들의 전력은 서구 제국에게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시급하게 성벽을 보강해야 할 필요를 느낀 기사단은 각지에서 자재를 끌어모아 성벽을 최대한 강화했다. 따라서 만약 십자군 기사단이 남겨놓은 회계 기록을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누가 영묘를 파괴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찍부터 할리카르나소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보드룸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성 베드로 성(페트로니움)이 건설되어 있었다. 아시아 지역 최후의 거점이었던 보드룸에 주둔하고 있던 기사단은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성 베드로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느끼고 성벽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기사단은 회반죽(Mortar)을 만들기 위해 땔감을 사들이고, 원료인 석회석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할리카르나소스의 유적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스 고대 도시의 폐허를 뒤지면 자재가 부족하지 않게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1522년의 일이었다.
도시에 남아 있던 백대리 석을 모조리 수중에 넣은 기사단은 이번에는 땅속으로 눈을 돌렸다. 지상에 남아 있던 유적의 규모로 볼 때 지하에도 적지 않은 석재들을 묻혀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예상대로 지하에는 풍부한 석재가 잠들어 있었다. 지하에 묻혀 있는 건축물의 규모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석회용 석재 외에도 건축용 석재도 다량 발견되었다.
계속 땅을 파 내려가던 기사단은 지하에서 대단히 넓은 사각형 공간을 발견했다. 그 공간은 전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조각과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 벽면에 새겨져 있는 부조에는 전투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넓은 사각형 공간 외에 또 다른 공간을 찾아낸 기사들은 그곳에서 백대리 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묘를 발견했다. 그 순간 성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시간이어서 묘는 다음날 열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같은 장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묘가 파헤쳐져 있었고, 황금 장신구를 비롯한 여러 부장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유품에는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던 기사들은 예정대로 석재를 모두 거둬들였다. 조각은 파괴되어 회반죽용 재료로 사용되었고, 대리석은 절단되어 성벽 보강재로 사용되었다.
기사단은 자신들이 지하에서 발견한 유적이 마우솔로스의 영묘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파괴한 유적은 할리카르나소스 도시 유적의 일부일 뿐 다른 유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전설로만 남아 있는 아름다운 영묘의 모습
마우솔로스의 영묘
현재 영묘는 이미 폐허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그 웅장한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다. 하지만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힐 만큼 크고 화려한 외관을 자랑했기 때문에 많은 문헌 속에 영묘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기록들에 따르면, 영묘는 4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제1층인 기단 부분에는 사각형 대리석 토대가 놓여 있고, 그 토대 위의 네 모서리에는 말을 탄 전사들의 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조각상들의 수준은 상당히 뛰어나며, 고대 그리스 조각의 우아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제2층은 영묘의 벽과 영안실 부분이다. 2층에는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금백색대리석으로 만든 36개의 이오니아식 1) 원주가 사방으로 나란히 서 있으며, 그 원조들 사이로 남산과 여신의 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그 조각상들에는 현실 속의 인간들처럼 각기 다른 표정이 새겨져 있으며, 총명함과 비장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2층 중앙에는 광택이 나는 백대리 석으로 만든 영안실이 자리 잡고 있다.
제3층은 지붕 부분이다. 원주 위로 받침대가 있으며, 그 위로 24단의 피라미드형 지붕이 솟아 있다.
마지막 제4층은 지붕 위로 화려한 대리석 조각상이 놓여 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이륜마차 위에 마우솔로스 왕과 아르테미시아 여왕이 타고 있는 형상의 이 조각상은 다른 동상들과 마찬가지로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모습으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모두 4층으로 건설된 영묘의 높이는 42m, 둘레는 123m였다. 건축 재료로는 순백색의 대리석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백대리 석이 산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그리스에서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당시 할리카르나소스가 얼마만큼 번영을 누렸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대명사가 된 '크고 화려한 영묘'
크고 화려한 겉모습과 더불어 당대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총동원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마우솔레움(Mausoleum. 크고 화려한 영묘)이라는 보통명사가 될 만큼 유명했던 마우솔로스의 영묘(靈廟)는 현재 그 모습은 사라지고 희미한 옛 그림자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마우솔로스의 영묘 유적은 에게 해에 접해 있는 소아시아의 보드룸이라는 작은 도시에 존재한다. 영묘가 건설될 당시 이 지역은 '할리카르나소스'라는 그리스의 도시였다. 그 때문에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이름 그대로 칼리와의 왕 마우솔로스(?~B.C. 353년)의 영혼을 위로하기 만들어진 것이다.
마우솔로스 왕과 아르테미시아 여왕이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우솔로스의 거대한 영묘와 왕의 아내이자 누이였던 아르테미시아 여왕의 이야기는 많은 유럽 작가들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언제부턴가 여왕에 관한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점차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지게 되었다. 다분히 작위적이지만, 아르테미시아 여왕이 마우솔로스 왕의 죽음을 탄식하며, 유해를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를 술에 타서 마시고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르테미시아 여왕을 중세 귀족사회에서 헌신의 상징으로 만들었으며, 태피스트리(다채로운 색실로 무늬를 짜 넣은 직물-옮긴 이) 등의 소재가 될 만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묘의 건설은 마우솔로스 왕이 죽기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B.C. 353년에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한 아르테미시아는 정성을 다해 영묘를 계속 건설해나갔다. 하지만 B.C. 351년 아르테미시아 역시 영묘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런데도 영묘의 건설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우솔로스의 영묘 [mausoleum at ha likarnassos] (고대유적, 2007. 6. 4., 모니노 다쿠미, 마쓰시로 모리히로, 이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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